원장님 이야기
사진 제목 / 등록일
9월 이야기 < 9월 >   무더위는 9월까지 이어지고 있다.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 방림원 일을 도와주신다고 서울에서 회장님이 제주로 내려오셨다. 오시자마자 두 손에 연장을 챙겨 들고 방림원 구석구석을 돌보시더니 “이곳에 칡넝쿨이 많이 붙었군” 하신다. 작업할 곳을 정하시더니 낫 하나 손에 쥐고 우거진 가시넝쿨로 들어가셨다. 엉클어진 넝쿨 속에서 작업하신 회장님 몸에는 땀이 비 오듯 흘러 얇은 여름 작업복은 흠뻑 젖어 있고, 낫을 잡은 손목은 지친 듯 힘이 빠져 보였다. 작업을 대충 끝내고 오후에 사무실로 내려오셨다. 앉자마자 기운이 하나도 없이 하시는 말씀이 작업 도중 안경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어디에 벗어 놨는지, 떨어뜨리셨는지 정신없이 일에 열중하다 보니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방림원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회장님 안경을 찾느라 분주했다. 작업했던 장소를 이 잡듯이 헤집어도 안경을 찾지 못했다. 회장님께서 퇴근 무렵 직원들에게 안경을 찾는 사람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현상금 100만 원을 약속하시고, 힘 빠진 걸음으로 집으로 가셨다. 다음 날 출근도 하기 전에 안경을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회장님 안색이 밝아지시며 어서 방림원에 가자고 재촉하시는 바람에 서둘러 출근해 안경을 받았다. 안경을 찾아준 사람에게 고맙다며 기분 좋게 답례하셨다. 회장님은 다시 안경을 찾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셨다. 사실 그 안경은 아들이 회장님 생신을 맞이해 고가의 선물을 해드린 것이었다. 아들에게 선물 받은 안경이기에 특별한 안경이었다. 다시는 잊어서는 안 되는 선물이다. 아들이 선물해준 안경으로 세상을 다시볼 수 있으니 참 다행이다 생각한다. 
방한숙
2023.01.28
8월 이야기 8월은 복날이 세 번이나 들어있는 달이다.   식물도 덥다하고, 짐승도 덥다하고, 사람도 덥다덥다 한다.   최고로 덥다 하는 중복 날 우리 방림원 식구들은 삼계탕 한 그릇으로 더위에 지친 몸을 달랜다.   우리의 여름은 물과 풀의 전쟁이라 식물에 물주는 일로 방림원의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 풀을 뽑고 돌아서면 기다렸다는 듯이 새로 풀이 파랗게 올라온다.   더위와 상관없이 풀들은 쑥쑥 잘도 자란다.   더위와의 전쟁 속에서 나는 요즘 팔순 생일기념으로 ‘석부작 병풍 작품’을 만들고 있다.   동(銅)으로 만든 팔 쪽 병풍에 돌로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돌로 산과 계곡을 만들고,식물로 색칠하려고 한다.   내 머릿속에 먼저 그림을 그리건만 잘 될지 궁금하다. 하여튼 해보자. 끝이 있겠지...  
방한숙
2023.01.14
7월 이야기 칠월이면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달이다.   더위와 가뭄이 겹치는 바람에 식물관리에 무척 힘들다.   뜨거운 뙤약볕에 못 이겨 수국의 화려한 모습이 빨리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하루 종일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주건만 식물들의 갈증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이럴 때 시원한 빗줄기 내려주면 얼마나 고마울까?   어서 여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여름이 시작되는 칠월 첫 달이기에   내 생각이 좀 주책스럽구나. 
방한숙
2023.01.14
6월 이야기 이날은 사람들이 말하는 팔순이라 불리우는 내 생일 날이다.   팔십 년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지나버린 시간이지만 이제 와 생각하니   몇 시간의 짧은 기억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그 짧은 기억 속엔 식물들과 보낸 이야기가 전부인 듯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식물들과 함께하였기에 팔십 년이란 긴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덕분에 지금까지 건강을 유지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지만 남아 있는 시간도   그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살아갈 것이다.   몸은 늙어 힘은 없어도 숨을 거두는 시간이 다가온다면 꽃다운 청춘으로 세상을 떠날 것이다.                                                                   2022년 6월 17일
방한숙
2023.01.14
5월 이야기 내 생에 큰 행사가 주어졌던 5월이다. 5월 16일은 ‘박물관 특별 공로상’을 받은 날이다. 내가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일생에 명예와 영광을 한 몸에 받은 설레고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상을 받을 수 있게끔 수고해주신 정세호관장님께 감사드리고, 어머니상을 받는다고 명품가방과 시상식 날 입을 옷을 준비해준 아들에게 고맙다. 그리고 내 몸 아끼지 않고 땀 흘려 일해준 방림원 직원 모두에게 깊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방한숙
2022.06.13
4월 이야기 방림원의 4월은 꽃 전시장이다. 곳곳에 어디를 가든 화려한 꽃을 만나볼 수 있는 4월이다. 나는 꽃들의 만찬회에 참석할 시간도 없이 코로나라고 하는 못된 놈이 나 좋다고 찾아오는 바람에 일주일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평생을 자연과 더불어 지낸 나에게 그 시간은 창살 없는 감옥이었다.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방림원은 어느덧 핑크빛으로 물들어 있고,나무 아래 숲속은 나물 밭으로 변해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꽃들의 곁으로 와서 나는 행복하고, 나물로 반찬을 만들어 먹으면 몸에 좋은 건강식이다. 곰취, 국화, 부지깽이 이 모두가 나물 시장이다. 꽃들로 눈은 즐겁고, 나물을 보면 배부르고 코로나로 인해 지친 내 몸은 하루 만에 치유가 되는 것 같다.
방한숙
2022.06.13
3월이면 3월이면     3월이면 핑크빛으로 물들인 방림원 숲속에 연두색으로 올라오는 새싹은 꽃보다 더 아름답다. 구석구석 피어오르는 꽃들을 둘러보기에는 하루해가 너무 짧다. 아름다움에 흠뻑 젖은 삼월에 이 봄을 어떻게, 어떤 그릇에 담아보면 좋을까?오색으로 물들인 꽃들은 내 눈에 담고 꽃에서 풍기는 짙은 그 향기는 내 가슴속에 담는다.꽃에서 풍기는 짙은 그 향기는 내 가슴에 담아보고 생명의 빛깔이 있는 봄은 화분에 옮겨 심고 넘치고 넘치는 봄날을 모두 모아 땅에 담아보았다. 방림원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봄을 한 아름 담아 안겨주고 싶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이 숲은 임자가 따로 없으니 보는 사람이 임자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요. 그것이 우리 모두의 행복이다. 2022.3.16
방한숙
2022.04.13
2월 이야기 봄이 오는 길목에 겨울이 떠나기 아쉬웠나 보다.이월이면 틀림없이 찾아오는 꽃샘추위에 방림원은 다시 겨울을 만난 듯하다. 연못, 수도꼭지 같은 곳은 물이 고여 모두 얼어버렸다. 한나절 따사한 햇볕 내리쬐면 수도꼭지에서 똑! 똑! 한 방울씩 물이 떨어지고, 그 위에 딱새 한 마리 머리를 거꾸로 쑤셔 박고 물 한 모금 목을 축이고 날아 가 버린다.딱새 날아가는 날갯짓 그 바람 소리에 힘 있는 삶의 소리가 들려온다.   살얼음이 채 녹지 않은 연못 속은 맑은 포도알처럼 뭉실뭉실한 개구리알이 군데군데 모여있고, 알 속에 수백 마리 올챙이 숨 쉬는 소리에 얼어있던 연못이 살아 움직인다. 앙상한 나뭇가지 밥알처럼 붙어있는 꽃눈은 살찌는 소리가 정겨웁고 딱딱한 흙을 밀고 뾰족이 잎을 내밀며 인사하는 수선화가 무척 반갑구나. 이 모두가 다양한 생물이 봄을 장식하려고 꿈틀거리는 것이니 나도 봄맞이하러 잠자던 호미 꺼내 들고 방림원 숲길을 거닐어본다. 내 다리에도 힘이 솟아오르는구나.2022.2.10
방한숙
2022.04.05
1월의 이야기 1월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는 달이기에1년의 시간을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설계하고 꿈을 꾸면서 그림을 그려 보기도 하는 달이다.막상 세월이란 공간 속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려니 펜대를 잡은 손목엔 힘이 없고 빛깔도 흐릿해져 희미해지니 그 모든 것은 생각이요 마음뿐이다.생각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은 채 시곗바늘은 쉴새 없이 빨리도 지나간다. 세월은 참 빠르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느지막이 방림원 숲길을 걷고 있다. 숲속에 들어서니 노란 복수초, 마취목, 매화, 꽃이 활짝 피어 나를 반겨주니 봄은 봄이로구나저 많은 꽃들이 내 인생에 반찬이라고 생각하니 나는 배부른 인생을 살아온 것 같다.어느새 봄을 알리는 방림원 푸른 동산은 봄옷을 화려하게 갈아입고, 내가 걸어가는 이 언덕에도 새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건만 오늘따라 매일 걷던 이 길이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질까?20년 동안 오고 간 내 걸음이 쌓여 찰나처럼 지나간 발자취가 방림원 그 자리에 겹겹이 쌓여 세월의 탑을 만들어 놓고 싶다.그 세월의 탑이 무한한 시간 속에 오래도록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주길 마음속으로 빌어본다. 오늘도 방림원을 거닐며 내 간절한 바람을 빌어본다.2022.1.31
방한숙
2022.02.15
12월의 이야기   2021년 12월 31일 금요일 마지막 밤이다. 몇 일전 12월 22일 동짓날은 팥죽 먹는 날로만 기억을 하고 팥죽 한 그릇 먹고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동지가 지나면 새해가 바뀐다는 현실 앞에 나는 지나간 일 년의 시간들을 돌이켜 되돌아 보곤 한다. 코로나라는 병마가 찾아오는 바람에 내 일상 생활이 뒤죽박죽 엉켜 버렸다. 세상 사람들의 발목은 묶여 있고 코로나가 주인이 되어 버린 시간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힘겨운 싸움을 할 때 언제나 그 중심에 방림원이 서 있었다. ‘어떻게 하면 방림원을 잘 이끌고 갈 수 있을까?‘ 몇 년을 두고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해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식물과 함께한 40년 세월을 넘고 넘다 보니 마음도 지치고 몸도 힘들고 기억도 늙어버렸다.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 속에 살아있는 방림원이 있기에 꿈도 꿀 수 있었고 내 인생의 설계도 할 수 있었다. 새해에 아름다운 방림원을 머리 속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고 설계를 하면서 2021년 마지막 밤에 이 글을 쓰고 있다.   시간은 정말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    2021. 12. 31
방한숙
2022.01.04